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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불편한 진실'이라고 표현한 그 진실이야 말로 사실 익숙한 진실이다. 경영학 교과서에 나올 법한 리더십 얘기도 이번 사건 이후 많이 거론됐다. 물론 상당히 훌륭한 리더십이 작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33인이 진짜 기꺼이 동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는 사람들이었다면 그 리더십은 그렇게 찬양받을 만한 게 못된다. 갈등과 반목이 만연한 상황에서 적정 수준으로 불만을 가라앉히고 집단을 와해시키지 않도록 이끄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순한 양이고 알아서 풀 뜯어먹고 알아서 귀가하는 데 양치기 개가 왜 필요있겠나.

그런 일은 돼지가 양을 치는 <꼬마돼지 데이브> 같은 만화영화에서나 등장한다. '불편한 진실'은 현실을 복사하지만 특정한 카메라의 눈으로 재현하는 방식에서 비롯한다. 이번 일처럼 사실과 닮았지만 사실과 완전히 다른 것들을 우리는 많이 봤고, 중독됐고, 매번 속는다. 완벽하게 정돈돼 너무 깔끔한 진실은 진실이 아니다. 건강한 진실에는 밭에서 막 뽑아낸 무처럼 흙이 묻어있다. 우리는 직접 밭에서 채소를 뽑아먹지 않고 대형마트에서 잘 손질된 것을 먹듯이, 진실도 있는 그대로보다는 연출되고 해석돼 스크린에 쏘아진 것을 더 선호나는 것일까.

만일 그들의 인간적인 결함과 힘겨움, 후회와 비탄 등이 구조후에 가감없이 전달됐다면 나 또한 그들의 구조 드라마에서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완전함으로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불완전함 때문에, 그 불완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미흡하지만 최선의 결론을 찾으려 노력할 때 존중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표현이 적용되는 건 그런 순간이다. 나는 33인이 지하에서 모두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절박한 다목적 쇼비즈니스의 흉계에 말려들면서 존엄성이 훼손되고 말았다.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발을 감추고 하늘로 향한 시선을 클로즈업한다고 우리가 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불편한 진실'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생환한 33인 가운데 다시 갱도로 들어갈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으나, 그 몇 명을 포함해 앞으로 많은 광부들이 여전히 절망을 종이 한 장 앞에 둔 열악한 상황의 지하 탄광에서 삽질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33인은 돌아왔지만, 330인 아니 수만, 수십만명이 땅에 묻여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칠레 광부들의 퇴원 소식이 전해진 16일 아니나 다들까 중국 허난(河南)성 위저우(禹州)시의 핑위(平禹)석탄전기공사 소속 탄광에서 사고가 있어 37명이 매몰됐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래서 한 가지 진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칠레의 광부 33인은 살아서 지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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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을 좀 더 이해하고자,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Sex, Lies, and Videotape)>를 봤다.
뭐지?
다시 한 번 봐야 하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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