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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 날의 아침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을 것 같다.
 
평소보다 1시간이나 이른 등교였다.
이틀 전, 토요일, 농구를 하다
발목을 삐었기 때문에, 우산 하나를 버팀목으로
절룩거리며 걸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 이전에, 어머니와 약간은 말다툼이 있었다.
그냥 혼자 가겠다는데도,
어머니께서 차를 태워주시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마을버스가 지나가는 길목에 도착했다.

그리곤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사실 마을버스가 언제부터 다니는 줄 몰랐다.
아침마다 마을버스가 다닌다는 걸 알긴 했지만,
그렇게 1시간이나 일찍 나와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일찍은 안 다니는 듯 했다.
 
4월의 아침공기는 상쾌했다.
약간은 안개가 끼인 날씨였다.
 
골목은 고요했다. 가끔 들리는 소리란,
지저귀는 새들과, 강아지들,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아침상 차리는 소리가
전부였다.
 
나는 그냥 무심하게 서서 마을버스가 오는 쪽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어머니와의 말다툰 기분이 약간은 언짢았고,
약간은 신경쓰였다.
그리고 마을버스는 오질 않았다.
 
그렇게 한 20분을 기다렸을까?
마을버스가 다니는 언덕쪽에서
교복을 입은 한 여자 아이가 내려오고 있었다.

방금 머리감은 듯 촉촉한 긴 생머리였고,
아마 중학교 교복인 것 같았다.
난 무심히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언덕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여자아이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얼굴이 환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더니 다시 언덕쪽으로 되돌아 갔다.
 
나는 계속 마을버스가 오는 쪽을 바라보며
마을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그 여자 아이가 다시 나타나 언덕을 내려왔다.
치마가 좀 짧아진 것 같기도 했다.
아니 확실히 짧아졌다.
미니 스커트 같아 보이긴 한데,
늘씬한 다리와 짧은 치마가 예뻐보였다.
 
그 여자 아이는 조금 내려오면서
치마를 좀 만지는가 싶더니 다시 올라가버렸다.
 
잠시 후 그 여자 아이가 다시 내려왔다.
치마는 조금 길어졌다.
 
아마 그렇게 치마 길이가 3~4번은 바뀌었던 것 같다.
마침내 내려온 그 여자아이는
나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옆에 섰다.
마을버스를 타려나 보다.
 
그럼 이제 곧 마을 버스가 오려나?
 
아마 그렇게 20분은 더 기다렸던 것 같다.
 
...
 
그 날 이후로 그 여자 아이와 등교시간마다
마주쳤던 것 같다.
 
....
 
사실 한 번 말을 걸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절룩거리는 다리로 뭘 어쩔려고?
다리가 나으면 말이라도 걸어봐야지.'

.....
 
그리고 지금와서 깨닫는 것은,
그 이후로 나의 인생은
그 때와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나는 ____하면 한 번 해봐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 그 때 내가 그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었더라면,
나의 인생이 좀 더 다채로워졌을까?
 
이제와서 그 질문에 답을 해 줄 순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비슷한 답을 구해볼 순 있지 않을까?
 
여전히 나는 '____하면 ____해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으니......
 
<Epilogue>
70% 나의 기억에 30% 허구임을 밝혀둔다.

첫 문장부터가 허구다.
비록, 그 날의 기억이
내 고등학교 기억 중에 손꼽을 만한
기억이었을지라도,

세월의 물살에 바위에 새겨졌던 기억이라도
희미해 질 수 밖에 없다.
 
사실 지금 가장 아름답게 남아있는 기억은,
사관 후보생 시절,
훈련의 마지막 절정인 행군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해서 고열에 몸을 뒤척이며
2~3일을 보낸 후,
퇴원해서,
목욕탕 앞에서 대열을 이루어 기다리고 있던
소대원들에게
퇴원 신고를 했던 때이다.
 
"필승! 신고합니다.
사관후보생 아무개는 200x년 x월 xx일부로
퇴원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필승!"
 
하늘은 붉게 물들어갔고, 초여름이었지만
초저녁 바람은 시원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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