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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고 앳된 피부를 가진 그 학생은 유명한 사립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수줍게 미소 짓는 모습이 예뻤다. 

그리고 여기는 시험장이다.


대부분의 시간에

멍하니 학생들을 바라보기 마련이지만, 

가끔씩 그 학생을 바라보고, 미소짓는다.


"시험 끝나기 5분 전이에요. 시험이 끝나면 두 손을 머리에 올려주세요."


(사실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굉장히 고민했다. 두 손을 머리에 올리라고? 학생들이 죄인도 아니고... 하지만 엄격한 규칙의 이행을 위해서...)


"시험이 끝났습니다. 양 손을 머리 위에 올려주세요. 그리고 가장 뒤에 있는 학생은 시험지와 답안지를 수험번호 순서대로 걷어 오세요."


가장 뒤 쪽의 학생들이 일어난다. 그 때, 감독관 (부)가 말한다.


"학생 이제 그만 쓰세요."


왠 걸, 

그 학생이 답안지를 계속 작성하고 있다.


"이거 아직 안 끝났어요."


학생은 허둥지둥 답안지 위의 연필 마크 위로 싸인펜을 덧칠하고 있다.


"시험 끝났어요."


학생은 애써 무시하는 듯 하다.


답안지를 보니 아직 한참은 남은 듯 하다.


한 2~3초를 기다렸을까?


아, 나는 그보다 더 기다렸을 것이다.


감독관(부)가 말한다.


"이제 그만 하세요. 안 그러면 부정행위에요."


학생은 1~2문제 더 덧칠을 하더니 펜을 놓는다.


짧은 시간의 긴장이 해소되었다.


학생의 다급함, 

감독관의 내적 갈등(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부정행위로 처리해야 하나?), 

다른 학생들의 의혹.


아마도 나는 그 학생을 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감독관(부)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 짧은 시간의 교감의 효과는 대단했다. 정말이지 나는 그 때,

"더 이상 계속하면 부정행위에요!"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약해질 데로 약해진 것이다.


-=-=-=-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서,

내가 단호하지 못했던 이유를 곱씹어 보았다.


단 몇 초 동안의 눈맞춤?

문제를 못 풀어서가 아니라 답안지에 옮기지 못해서 점수를 받지 못함에 대한 안타까움?

다급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학생에 대한 연민?


그러나 단호했어야 하는 이유들도 떠오른다.


만약 학생이 여기서 시간 배분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좀 더 중요하고, 좀 더 엄격한 시험장에 들어갔을 때,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한다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학생에게, 이번 시험에서 아슬하게 넘어간 이 사건은

행운이 아니라 불행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단호해야 했다.

아마도 학생은 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만은 단호해야 했다.


그리고 울지도 모를 그 학생에게 

위로를 하면서 그 이유를 따뜻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그 학생에게 해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

앞으로 더 중요한 시험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 사건으로 앞으로의 실수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아마도 아이들 앞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리라.


연민을 그대로 보여줄 수 없을 때도 있다는 것.

아이의 미래를 위해 엄격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그것이 단지 아이를 벌 주기 위함이 아니라,

아이의 행복과 미래를 위함이라는 것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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