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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사람의 목숨을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행군 후 3일 만에 고열과 기침,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던 나는 소대장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받으며 병원으로 갔다. 체온 측정 결과 제법 높은 39도 정도가 나왔다. 군의관은 체온 측정 결과를 보고, 편도선을 보고, 청진기를 대어 보더니 입실을 하란다. 나는 두통이 심하고, 기침도 났으며, 허리는 무거운 것을 들면 끊어질 듯 했지만, ‘뭐 그럴 것까지야?’란 생각에, 약이나 몇 개 주고, 소대장에게 무리한 일이 시키지 말라고 얘기만 좀 해달라고 말했다. 군의관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갸우뚱거린다. 사실 입실을 하면 훈련도 열외고, 다소 편히 쉴 수 있으므로 거부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만도 하다. 다시 한 번 묻는다. “왜지? 입실해야 하는데...” “소대장 좀 불러오게.” 소대장이 들어온다. “얘가 지금 입실해야 하는데, 안 하겠다고 하네요. 얘 지금 계속 훈련받으면 죽을 수도 있거든요. 죽으면 책임지시겠어요?” 항상 의심 가득한 공격적 눈초리였던 소대장은 순간 낯설게도 자신없음, 두려움 그리고 회피의 칵테일 표정으로 변한다. “입실해.”

체육대회가 있던 전날, 나는 단지 영화관을 갔을 뿐인데, 그 날 저녁을 고열에 시름시름 앓더니, 다음날엔 정말 춥고, 두통이 심했다. 과연 체육대회를 나갈 수 있는가? 전화로 몸이 아퍼서 휴가를 내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 출근은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추위를 이기고자 내복을 주섬주섬 찾아 입기 시작했다.
하나, 두개를 입었다고 해서 한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추위를 이기고자 껴입은 내복은 한 겹 한 겹 압력을 더해가더니 6개째가 되어선 가슴을 짓누르는 압력이 폐의 한계치를 넘어섰는지, 이러다간 숨 막혀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덜컥 선사하였다. 결국 마지막 하나는 벗어내고, 조금은 가뿐해진 폐와 함께 출근을 하였다. 대대장은 내가 체육대회를 빠지고 휴가를 내겠다고 하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불편함을 내비쳤다. 그리곤 오늘 마감인 일을 모두 끝내고 들어가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초인적인 의지와 정신력으로 정신을 붙들고 일을 끝낸 나는, 약의 도움 없이 겪어야 할 기나긴 고통이 못내 두려웠는지, 병원으로 갔다. 의사와 간호사는 놀라워 했다. 내복을 5개 입었다는 사실과 5개의 내복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숙소에 2~3개 더 입다는 말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들의 놀라움은 이 정도가 적당할 듯 싶었다. 나는 얘기했다. “그만 놀라고 약이나 좀 지어 주세요. 대대장이 체육대회를 안 나가서 삐진 것 같으니, 약 먹고 체육대회 나가야 겠어요.” 물론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체육대회 나가야 되는데, 감기 때문에 춥고 두통이 있네요. 약 먹고 나갈려고 하니, 약 좀 지어주세요.” 군의관은 얘기한다. “이 춥지도 않은 날씨에 내복 5개나 끼어 입고 체육대회 나가면 죽을 수도 있어요.” 음... 어디서 들어본 얘기 같다. 다른 건, 내 옆에 소대장이 없다는 것 정도? 고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 정도. 부담스러웠다. 사람의 목숨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 “그러니 링겔 맞고 한 숨 자고 가요.” 그의 말은 달콤하며, 부드럽게 나의 마음을 다독인다. 어떤 저항도 사치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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